[고난주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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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 오히려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요즘처럼 바쁘게만 흘러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음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며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문턱이죠. 죽음을 부정하는 사회,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병실에서, 장례식장에서, 뉴스 속에서... 우리는 늘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일처럼 여겨지진 않죠. “아직은 아닐 거야”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준비하는 삶 이 더 지혜로운 삶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삶은 유한하지만, 준비된 죽음은 축복입니다 한 노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고 죽음을 대비한다." 그는 유언장을 정리했고,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만나 어떤 말을 전할지도 적어두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문 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지 재산 분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 내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내려놓을 것과 붙잡을 것을 구별하는 과정 입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삶 성경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때를 두려움 없이 맞이하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영혼을 준비하는 삶 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통과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어요 .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 입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자는 삶을 더 진지하게 삽니다 ...

육과 말, 그리고 성령의 역사


육과 말, 그리고 성령의 역사

1. 육은 육만 터치할 수 있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적 영역에 속해 있다. 우리의 몸은 다른 육체와 접촉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설 수는 없다. 육은 오직 육끼리만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2. 말은 혼을 움직인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말은 마음과 생각, 감정과 의지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어떤 말은 상처를 주거나 치유하기도 한다. 또한, 말은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하며, 평생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조차도 인간의 가장 깊은 차원, 즉 영의 영역을 온전히 터치할 수는 없다. 말이 아무리 강력해도,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역사다.

3. 성령만이 영을 변화시킨다

영의 영역은 오직 성령만이 온전히 다룰 수 있다. 성령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비추고,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죄와 상처, 묶인 사슬들을 드러내신다. 그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만 십자가의 사랑이 온전히 믿어질 수 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감동적인 간증을 전해도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영혼 깊이 참된 믿음이 심어지지 않는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게 하는 것은 인간의 설득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4.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결국, 인간은 육과 혼과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 육은 육을 터치한다.
  • 말은 혼을 움직인다.
  • 그러나 영은 오직 성령만이 변화시킨다.

이 원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게 된다. 대신,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맡기게 된다.

십자가의 사랑이 믿어지는 것은 우리의 설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성령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사랑으로 말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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