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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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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 오히려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요즘처럼 바쁘게만 흘러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음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며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문턱이죠. 죽음을 부정하는 사회,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병실에서, 장례식장에서, 뉴스 속에서... 우리는 늘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일처럼 여겨지진 않죠. “아직은 아닐 거야”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준비하는 삶 이 더 지혜로운 삶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삶은 유한하지만, 준비된 죽음은 축복입니다 한 노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고 죽음을 대비한다." 그는 유언장을 정리했고,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만나 어떤 말을 전할지도 적어두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문 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지 재산 분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 내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내려놓을 것과 붙잡을 것을 구별하는 과정 입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삶 성경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때를 두려움 없이 맞이하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영혼을 준비하는 삶 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통과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어요 .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 입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자는 삶을 더 진지하게 삽니다 ...

[고난주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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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삶 “죽음을 자주 생각하면, 오히려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요즘처럼 바쁘게만 흘러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죽음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이며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문턱이죠. 죽음을 부정하는 사회,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병실에서, 장례식장에서, 뉴스 속에서... 우리는 늘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일처럼 여겨지진 않죠. “아직은 아닐 거야”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준비하는 삶 이 더 지혜로운 삶이라 말할 수 있어요. 삶은 유한하지만, 준비된 죽음은 축복입니다 한 노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고 죽음을 대비한다." 그는 유언장을 정리했고,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만나 어떤 말을 전할지도 적어두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문 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지 재산 분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 내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내려놓을 것과 붙잡을 것을 구별하는 과정 입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삶 성경은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때를 두려움 없이 맞이하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영혼을 준비하는 삶 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통과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어요 .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 입니다. 죽음을 묵상하는 자는 삶을 더 진지하게 삽니다 ...

부활절의 의미와 기독교에서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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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절의 의미와 기독교에서의 중요성 – 생명을 주신 부활의 은혜 부활절(Easter) 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절기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이 사건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소망이 시작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1. 부활절은 예수님의 승리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단지 죽음에서 살아나신 기적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며,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분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죄 사함과 영생의 약속을 보증하는 표징입니다. 2. 부활은 구원의 확증이자, 영원한 생명의 시작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5) 이 말씀이 현실이 된 날이 바로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도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부활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생명력입니다. 3.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뿌리이며, 살아 있는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17).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는 반석이며, 모든 고난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소망의 근거입니다. 삶의 끝이라 여겨지는 죽음조차, 부활 안에서 새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4. 부활절은 공동체가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부활절은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와 찬양,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날 입니다. 이 날은 단지 전통적인 행사나 축제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는 회복의 기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누리...

묘약이란? 예수님의 사랑이 주는 치유와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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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약(妙藥)이란? 예수님의 사랑이 주는 치유와 평안 묘약의 의미와 중요성 사전적 의미로 *묘약(妙藥)*은 신통한 효험을 지닌 약 을 뜻합니다. 한때 무협소설을 보면 주인공들이 신비한 약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만큼 묘약은 희귀하고 강력한 효과 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의학에서도 특정 질병에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약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약초나 음식 또한 어떤 질병에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약을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효과적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육신을 위한 묘약 이 존재하는 것처럼, 영혼을 위한 묘약 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과 육신을 동시에 치유할 수 있는 묘약 은 무엇일까요? 육신과 영혼을 위한 최상의 묘약, 예수님의 사랑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좋은 약을 찾지만, 육신과 영혼을 동시에 치유하는 특효약 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와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 질환 을 겪고 있으며, 정신적인 평안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치유제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 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감정과 말은 우리 몸에 좋은 호르몬을 분비 하도록 돕습니다. 특히,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할 때, 엔돌핀보다 4천 배 강력한 **다이돌핀(didorphin)**이 분비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이돌핀은 행복과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육신과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 우리는 삶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건강의 문제 불확실한 미래에 ...

성령을 받는 방법과 간절한 기도의 중요성-성경적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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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받는 방법과 간절한 기도의 중요성 – 성경적 원리 성령을 받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성경을 보면 성령이 임하는 다양한 방식이 나오는데요, 대표적으로 말씀을 들을 때(행10:44), 안수를 받을 때(행8:17), 그리고 기도를 할 때(눅11:13) 성령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요. 이 중에서도 기도할 때 성령을 받는 사례가 가장 많으며, 진실한 기도가 중요한 요소 랍니다. 1.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을 받게 돼요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 강림 사건이 등장하는데요,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강하게 임했어요. 이처럼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하심이 더욱 강력하게 나타나죠. 교회나 신앙 공동체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은 성령을 경험하는 데 중요한 과정일 거예요. 2.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이 임하게 돼요 사도행전 2:36~38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한 후, 사람들은 깊은 깨달음을 얻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어요. 그러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세요.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겁니다.” 즉,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믿으며, 거룩한 삶을 결단하는 과정 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회개 기도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3. 개인이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부어져요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받는 기도의 태도에 대해 비유를 드셨어요. 한 사람이 한밤중에 친구 집을 찾아가서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 요청해요. 하지만 친구는 이미 문을 닫고 가족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죠. 그러나 이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리며 간절히 요청하자 , 결국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떡을 건네줘요.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세요. “구하세요, 찾으세요, 두드리세요.” ...

예배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예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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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예배 방법 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영적 행위입니다. 성경에서는 예배를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거룩한 행위 로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예배란 무엇이며,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본 글에서는 예배의 의미, 올바른 예배 방법, 예수님이 원하시는 예배, 그리고 삶에서의 예배 실천 방법을 성경 말씀을 기반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예배의 의미: 성경적 정의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심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에서는 예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히브리어와 영어에서 본 예배의 뜻 아바드(עָבַד) : ‘예배하다’, ‘섬기다’, ‘엎드리다’라는 뜻을 가짐. Worship(워십) : ‘가치(Worth) 있는 존재에게 경배(Ship)를 드리는 행위’. 즉, 기독교 예배는 창조주이자 구속주 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것 을 의미합니다. 2. 예배의 대상: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경배 예배는 사모하는 마음과 간절한 믿음 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올바른 자세 겸손한 마음 (마태복음 5:3) :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함.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남 (히브리서 11:6) :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이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함. 오직 하나님을 예배의 중심 으로 삼고,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배해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란?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 (요한복음 4:23~24)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령(神靈, Spirit): 하나님의 영(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 진리(眞理, Truth):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에 기초한 예배 또한 사도 바울은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로마서 12:1). 즉, 예배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4. 예수님을 통한 예배의 ...

속량이란? 예수님의 피값으로 치러진 구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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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량(贖良)이란? 예수님의 피값으로 치러진 구원의 의미 속량의 의미와 성경적 배경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속량(贖良)’은 단순한 종교적 개념이 아닙니다. 원래 이 단어는 로마 시대 노예시장 에서 사용되던 상업적 용어로, ‘값을 치르고 자유를 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 시대 , 노예제도는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의 국민들은 노예로 팔려갔고,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가족 중 일부를 노예로 파는 일도 많았습니다. 노예들은 가축처럼 취급되었으며, 요일별로 성별과 연령에 따라 거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월요일 : 남자 노예 화요일 : 여자 노예 수요일 : 어린이 노예 도망자 노예와 그들의 운명 노예들 중에는 자유를 찾아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망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 다시 붙잡혔습니다. 붙잡힌 노예들은 이마나 등에 불로 ‘도망자’라는 낙인 을 찍혔습니다. 이렇게 낙인찍힌 노예들은 가치가 떨어졌고, 헐값에 거래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노예의 가격은 약 10만 원 이었지만, 도망자 노예는 1~2만 원 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주인들은 또다시 도망칠까 봐 구매를 꺼렸고, 결국 도망자 노예들은 작은 방에 20~30명씩 갇혀 하루 한 끼만 먹으며 하루빨리 팔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속량 – 도망자 노예를 위한 대속 어느 날, 이런 도망자 노예 중 한 명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노예의 가격은 단 15,000원 . 그러나 그는 주저 없이 그 노예를 가리켰습니다. 노예 주인은 말했습니다. “이 노예는 도망자입니다. 쓸모없는 쓰레기입니다. 더 나은 노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요동하지 않고 오직 그 도망자 노예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노예 주인이 매긴 가격이 아니라, 사람들이 평가하는 가치가 아니라, 그는 자신의 생명의 피값을 치르면서까지 이 노예를 사겠다고 결정 했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예수님의 결단 이 모습을 본...

은혜의 뜻만 알아도 감동이 밀려 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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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뜻만 알아도 감동이 밀려오는 이유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은혜’라는 단어를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은혜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요? 은혜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 입니다. 이 뜻만 제대로 깨달아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밀려옵니다.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恩惠, Grace)란 인간의 공로나 자격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선물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은혜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오히려 죄만 짓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랜 신앙생활 속에서 첫사랑이 식어버렸을 때도, 형식적인 믿음 속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더 의식할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구원, 말씀, 공기, 햇빛, 가족, 교회 공동체 까지 모든 것을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사도행전 13장).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의로운 삶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로마서 3:20),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형식적인 부분에 집착하며 남을 정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해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자 마침이시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율법의 억압에서 자유하게 된다. 죄와 죽음의 문제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는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기뻐하며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에 가득 찬 일부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박하며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는 "너희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간다" (사도행전 13:46)...

육과 말, 그리고 성령의 역사

육과 말, 그리고 성령의 역사 1. 육은 육만 터치할 수 있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적 영역에 속해 있다. 우리의 몸은 다른 육체와 접촉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설 수는 없다. 육은 오직 육끼리만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2. 말은 혼을 움직인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말은 마음과 생각, 감정과 의지를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어떤 말은 상처를 주거나 치유하기도 한다. 또한, 말은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하며, 평생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조차도 인간의 가장 깊은 차원, 즉 영의 영역을 온전히 터치할 수는 없다. 말이 아무리 강력해도,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역사다. 3. 성령만이 영을 변화시킨다 영의 영역은 오직 성령만이 온전히 다룰 수 있다. 성령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비추고,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죄와 상처, 묶인 사슬들을 드러내신다. 그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만 십자가의 사랑이 온전히 믿어질 수 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감동적인 간증을 전해도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영혼 깊이 참된 믿음이 심어지지 않는다. 십자가의 사랑을 믿게 하는 것은 인간의 설득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4.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결국, 인간은 육과 혼과 영 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육은 육을 터치한다. 말은 혼을 움직인다. 그러나 영은 오직 성령만이 변화시킨다. 이 원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게 된다. 대신,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맡기게 된다. 십자가의 사랑이 믿어지는 것은 우리의 설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성령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사랑으로 말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만 했던 이유를 아시나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야만 했던 이유 (창세기 21:9-11) 창세기 21장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이삭을 키우는 과정에서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가정 내 갈등이 아니라, 영적 의미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이 담긴 중요한 장면입니다. 1. 종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의 구분 하갈은 사라의 여종으로,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은 사람의 방법과 인간적 수단으로 태어난 자녀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율법과 종의 자녀로 비유하며,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로 태어난 자유의 자녀 이삭과 함께 유업을 이을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율법과 은혜의 대조이며, 행위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2. 종의 자녀의 특징과 영적 의미 종의 자녀는 항상 눈치를 보고,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스스로의 행위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자유가 없고, 죄성과 육신의 본성 아래 눌려 있는 존재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상징하는 율법 아래의 자녀는 인간적 방법과 수단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맞지 않습니다. 결국 이들은 영적 유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3. 이삭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약속의 자녀입니다. 이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100%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주어진 새 생명이며, 복음의 예표입니다. 이삭은 자유의 자녀로서 하늘의 기업을 이을 자이며, 하나님이 친히 주신 생명의 상징입니다. 4. 예수 생명과 새 생명으로 연결되는 구속사적 의미 이삭을 통해 나타난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믿음 생활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믿음의 시작

1. 믿음의 시작 – 하나님의 시선과 나의 시선의 차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계획 안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보십니다. 사사기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여”라고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신을 약하고 미약한 자라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첫 번째 원리가 드러납니다. 믿음은 나 자신을 보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 정체성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2. 믿음의 원리 –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이 약속은 사람의 논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환경과 조건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붙잡는 것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불리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약속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3. 예배와 믿음 – 말씀을 붙잡고 우상을 제거하라 믿음은 예배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참된 믿음은 우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로 나타납니다. 4. 믿음의 실천 – 하나님의 영과 함께 전쟁을 선포하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습니다. 두려움과 연약함이 담대함과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믿음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믿음은 감정이나 생각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실제로 행동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은 상황을 바꾸는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5. 믿음의 삶 – ...

하나님 나라 비밀, 마음밭

1. 길가밭 – 말씀을 빼앗아가는 사단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 밭은 길가밭입니다. 이 밭은 말씀이 뿌려지지만, 단단하게 굳어진 땅이라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때 사단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아갑니다. 결국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 소식에 더 관심을 두고, 마음이 굳어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2. 돌짝밭 – 뿌리내리지 못하는 믿음 두 번째 밭은 돌짝밭입니다. 이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믿음이 깊어지기 전에, 어려움이나 시험이 찾아오면 쉽게 넘어지고 포기해 버립니다. 처음에는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믿음이 깊어지지 않아 끝까지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3. 가시덤불밭 – 세상의 걱정과 욕심 세 번째 밭은 가시덤불밭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걱정과 돈에 대한 욕심, 세상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이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말씀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소중히 여기다 보니, 결국 말씀은 자라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4. 좋은밭 –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 마지막 네 번째 밭은 좋은밭입니다. 이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깊이 새기며 지킵니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인내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5. 우리 마음밭은 어떤가요? 예수님의 비유는 지금도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내 마음은 지금 어떤 밭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지켜가고 있나요? 좋은밭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의 마음도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의 ...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참으로 많지만, 그 가운데 진정 택함을 입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결국, 교회라는 조직이 구원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 한 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죠. 천주교, 교황, 종교적 시스템과 영적 권위보다 더 중요한 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인데요. 교회 봉사나 종교활동에 열심인 것도 좋지만, 그보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이 우선이어야 해요. 신앙생활은 흐릿하게가 아니라, 확실하게! 무엇보다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께 향해야죠. 우리의 관심과 초점은 언제나 예수님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리칩이나 특정 회개운동, 신부운동 같은 것들이 신앙의 본질이 아니에요. 결국 예수님 한 분께 집중하는 게 핵심이죠. 결혼식에서도 손님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거예요. 예복을 갖춰 입지 않은 사람은, 결국 자기 중심적인 신앙을 드러내는 것인데요. 자신만을 위한 길을 가다 보면, 결국 예수님과 멀어지게 되는 거죠. 결국, 자기 자신이냐? 예수님이냐?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해요. 내가 잘되는 게 우선이라고 착각하지 말고요. 실제로는 예수님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사람이 참 많거든요. 진짜 복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내 인생을 드릴 때 오는 거예요. 천국 혼인잔치에서의 왕자는 나일까요? 아니요, 그 자리는 예수님만이 합당하세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그분을 위해 내 삶을 전부 드리면, 예수님이 모든 걸 채워주실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만 구하는 삶을 사는 게 맞죠. 누가복음 10장 38절 이야기처럼 마리아는 주님 발 앞에서 말씀을 들었는데요, 마르다는 준비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복잡하고 정신이 산만해졌어요. 그렇게 분주하게 여러 일로 염려하고 근심했죠. 결국 사람과 일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예수님의 음성은 놓치게 되거든요.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온전한 신부가 되려면 불필요한 가지치기가 꼭 필요...

예수 사랑 열정이 더 해질려면

  1.예수 사랑과 생명의 핵심 예수님 사랑의 본질은 영혼 구원과 생명에 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불필요한 것들은 내려놓고, 오직 생명과 구원이라는 핵심을 붙든다. 이단과 율법주의는 죄와 두려움, 지옥 심판을 강조해 사람을 억누르지만, 성경은 사람 자체가 아닌 영혼 구원에 초점을 둔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이 있다는 진리는 반드시 전해야 한다. 2. 성령과 마귀의 역사 구분 마귀는 죄를 계속 지적하며 두려움과 정죄감으로 지옥으로 끌고 간다. 반면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신다. 성령은 임마누엘의 영,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하고, 영을 따르는 사람은 영의 일을 한다. 3. 성령의 인도와 예수님과의 관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채워진다. 성령은 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시고, 예수님께 속한 자는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며, 모든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삶이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 그가 진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다. 4. 성령의 사람과 팔복의 삶 마태복음 5장 팔복은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다.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깨끗하고, 화평을 만들며, 의를 위해 박해받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성령의 사람이다. 5. 다윗의 갈망과 예수님을 향한 마음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광야에서 주님을 간절히 갈망했다. 14년 동안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갈망했다. 진짜 성령의 사람은 삶이 어려울수록 예수님을 더 깊이 찾는 사람이다. 그 갈망이 바로 성령의 역사다. 6. 자유와 기쁨, 그리고 사랑의 깊이 고린도후서 3장 17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기쁨과 감사...

영원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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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영원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은 늘 하는것 같은데 바쁘다는 핑게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아니한것은 사실 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노라면 영원한 생명에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영원한것이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노후 설계도 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것처럼 몸부림치면서 살고 꿈을 꾸었지만 결국은 다 지나가고 없어 집니다.   중국에 진시왕도 오래 살고 싶어 불로초를 구하여 우리나라까지 사람을 보내곤것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말씀만이 영원하다  본문 렘51:59~64 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잘 나갈것 같은 바벨론이 사람이나 짐승이 거기에 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폐허가 되리라(62절)   바벨론이 이같이 몰락하여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때 바벨론이 멸망되어 나라까지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레미야 52장을 두고 사실 끝나는 말씀 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말씀만이 영원하다는것을 깨닫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참고로 스라야는 바룩의 동료로서 말씀을 기록하는자 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예레미야,바룩,스라야는 하늘나라 동역자 입니다.  '바벨론에 닥칠 모든 재난 곧 바벨론에 대하여 기록한 이 모든 말씀을 한 책에 기록하고 , 너는 바벨론에 이르거든 삼가 이 모든 말씀을 읽고 이 읽기를 다 한 후에 책에 돌을 메어 유브라데강 속에 던져 넣어라 이것은 바벨론이 몰락하여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피폐 하리라'  하고 예레미야 말이 여기서 끝이 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받은 스라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백성들에게 이 말을 읽고 전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는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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